1994년 「서울신문」 신춘문예에 「붉은 닻」이 당선, 문단에 등장한 젊은 여성작가의 첫 장편소설이다.

견고한 서사성과 염결한 작가정신이 가득 배어 있는 이 장편은 젊은 마이스터의 탄생을 예감케 한다.

소설 제목 「검은 사슴」은 뿔로 불을 밝히고 강력한 이빨로 바위를 먹고 사는 중국 고대설화에 나오는 환상 동물.

지상으로 올라와 햇빛을 보는 것이 꿈이지만 지상의 햇빛을 보는 순간 녹아버릴 수밖에 없는 운명을 안고 있다.

이것은 마음의 상처를 안고 살아가지만 그 상처와 대면하는 순간 존재의 정체성이 흔들릴 수밖에 없는 현대인의 숙명에 대한 빼어난 상징이라고 할 수 있다.

주인공 의선은 검은 사슴과 같은 여인.

햇빛이 내리쬐는 한낮 도심의 횡단보도에서 느닷없이 옷을 훌훌 벗어던지고 알몸으로 달음박질을 하는 여자다.

그녀는 이것이 햇빛과 정을 통하는 행위라고 말한다.

광부의 딸로 태어난 그녀는 주민등록번호도 없고 기억상실증까지 걸린 백치 같은 여자다.

제약회사 사환으로 일하던 어느 날 갑자기 가출을 하게 되고 그녀를 사랑하는 명윤은 선배 인영과 함께 그녀를 찾아 나선다.

기억의 뿌리를 찾아 떠난 주인공 의선과 의선을 찾기 위해 탄광지대를 찾아가는 그들.

현대인의 실존적 뿌리를 찾아가는 젊은 여성 작가의 고민이 쉽게 책장을 넘길 수 없게 만드는 소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