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종 경어체를 사용하며 느림과 단순함의 지혜를 낮은 목소리로 겸손하게 들려주고 있는 중견작가 한수산의 에세이집이다.

난해하지 않은 어투와 따뜻한 감수성으로 일상의 단상을 짤막한 글로 풀어낸 것으로, 백순실 화백의 컬러 도판들이 글의 맛을 더해준다.

작가는 끊임없이 욕망을 확대 재생산하는 현대 사회를 힘겹게 살아가는 동시대인들에게 '빠르게' 대신 '느리게 가라'며 아늑한 벤치를 제공한다.

'이제 함께 이 세상을 살아가야 할 두 분에게 늘 강물을 잊지 말라고 부탁드립니다.

어려운 산을 만나거든 돌아서 가십시오.

힘든 수렁을 만나거든 서두르지 말고 고였다가 흘러가십시오.' 살아가면서 결코 주례를 맡지 않겠다고 결심했던 작가가 사모했던 은사의 아들 부탁에 어쩔 수 없이 주례로 나서서 발언한 주례사의 한 대목이다.

이 책은 이러한 느림의 지혜를 섬세한 감수성으로 전해준다.

그리스 작가 카잔차키스의 잠언을 소개하면서 소중하고 찬란한 매순간들을 충실하게 활용할 것을 권고한다든지 욕조에 기대어도 바깥이 보일 수 있도록 눈높이의 창을 내고, 욕실에까지 스피커를 설치해 음악을 듣자든지 하는 것이 그 예이다.

청춘남녀는 물론 삶에 지친 모든 이들이 부담없이 읽을 수 있는 에세이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