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6년 처녀작 『쿰란』에서 놀라운 상상력과 해박한 지식으로 찬사를 받은 작가 엘리에트 아베카시스의 장편소설. 유대인 학살을 소재로 쓴 지적 역사 스릴러로, '어떻게 신(神)이 홀로코스트라는 잔혹한 악을 허용할 수 있었는가?'라는 문제를 제기한다. 작가 역시 유대인이지만 유대인은 가련한 희생양이며 독일인은 가해자라는 기존의 이분법을 넘어 '유대인 학살'이라는 참혹한 과거의 역사 아래 놓인 다층적인 시선을 보여준다. 또한 악의 화신이 됨으로써 세상의 악을 십자가로 짊어지려는 예수의 모습을 보여주며 세상의 죄악과 신의 존재, 인간 본성에 대한 심도 있는 견해를 제시한다.

1995년 겨울, 베를린 자택에서 독일의 저명한 정치가이자 신학자 실러가 허리가 잘린 채 발견된다. 사건은 미궁에 빠지고 수사에 뛰어든 젊은 역사학자 라파엘 심머와 기자 펠릭스 베르너는 유럽 각지를 넘나들며 유대신학자, 가톨릭 성직자, 역사학자, 아우슈비츠 생존자, 레지스탕스, 대독협력자들의 증언을 추적해나간다. 그런데 라파엘과 펠릭스의 조사가 진행됨에 따라 수사 결과와 상반되는 진실이 수면에 떠오른다. 세계적인 명성의 독일 정치가이자 신학자로 알려졌던 희생자 실러가 사실은 유대인이며 그가 자신의 생존을 위해 동족을 배신했음이 드러나게 된 것. 이로써 단순 살인사건으로 시작된 사건의 반경은 급속하게 넓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