팝스코리아 - 샤를르와 룰라의 목요일

간혹 가장 가까운 이로부터 상처를 받을 때가 있다. 누구보다 친밀하다고 여긴 이로부터 받는 상처, 그 고통의 깊이는 경험해 본 사람만이 헤아릴 수 있을 것이다. 영혼을 갉아먹으며 뜬 눈으로 밤을 새우게 하는 상처의 칼날, 우리는 그 칼에 무수히 찔리면서도 좀체 그 사람과의 관계를 청산하지 못한다. 친숙한 관계란 상처의 주고받음 속에서 생기기 마련이기 때문일까.

70년대 프랑스 문단의 주도적인 역할을 해온 마리 카르디날이 그러한 인간 관계의 불가해성을 소설로 풀어 놓았다. 40여년 동안 가깝게 지내온 예순살의 룰라와 샤르를을 통해 인간관계의 이면을 보여주고 있다.

어느날, 예순살이 넘은 샤를르와 룰라는 목요일마다 만나서 일정한 주제에 관한 토론을 하기로 한다. 미리 정한 주제에 관해 일주일간 생각을 하고는 목요일에 만나 토론을 벌이는 것이다. 한때 연인이었던 그들은 토론을 통해 프랑스 현대사와 문화사를 비판하지만 정작 그들이 관심을 두는 것은 서로의 마음이었다.

오랜 시간 가까이 지내온 사이인 만큼 그들은 상대방의 사소한 표정이나 어투 하나에서도 속 마음을 꿰뚫고 있다고 믿었다. 하지만 토론이 진행될 수록 그들은 서로에 대해 혼란만 느낀다. 상대에 대해 알고 있다고 믿었는데 토론을 할수록 서로에 대해 모르고 있다는 자각만 드는 것이다.

한편 그들은 시간이 지나면서 서로의 기억 속에 스며 있는 추억들을 되새김질하게 된다. 샤를르와 룰라가 연애를 하던 중 생긴 아이와, 아이를 두고도 헤어질 수밖에 없었던 상황들을 떠올리게 되는 것이다. 취향과 가치관이 달라 헤어지긴 했지만 우정은 여전히 유지해 온 샤를르와 룰라. 서로를 이해한다고 믿었던 그들은 추억을 떠올리게 되면서부터 서로에 대한 사랑과 증오를 동시에 느낀다. 추억이란 그 두 감정을 한꺼번에 선사하기도 하는 것이다. 모든 인간 관계가 그런 것처럼 말이다.

그러나 작가 카르디날은 소통의 불완전함을 자연의 이치로 보지 않는다. 남성 본위의 사회가 남녀간의 소통을 가로막는다고 진단한다. 예리한 칼날처럼 들이미는 카르디날의 언어를 통해 불통의 원인은 샅샅이 해부 된다. 남성과 여성, 이성과 감성, 억압과 핍박의 대결 구도로 진단한 불통의 원인은 소설의 곳곳에 포진하고 있어 사뭇 흥미롭다.

지극히 이성적인 샤를르는 점차 감정적으로 변해가는 룰라를 애정이 결여된 눈으로 바라보게 된다. 작가는 이 부분에서 이성이 감성보다 앞선다는 기존의 논리를 반박하고 싶었던 듯 하다. 남성으로서의 특권을 유지해온 이들이 차별 받는 영역에 속한 여성에게 냉정한 태도를 취하라고 요구하는 것 자체가 폭력일 수 있다는 것을 말이다. 더불어 남성은 이성적이고 여성은 감정적이라는 편견에 일침을 가한 것으로도 보인다.

소설의 말미에 이르면, 그들은 얼마큼 서로를 인정하고 이해하게 된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들이 상대를 모두 받아 들일 수 있는 것은 아닐 것이다. 언제나처럼 그들 사이엔 성과 사회에 대한 편견이 가로막고 있을 테니 말이다.

페미니즘 작가로서 유명한 마리 카르디날의 이 작품은 줄거리 보다는 샤를를와 룰라가 나누는 대화에 주목해 읽어야 한다. 하찮게 보이는 대화 속에 그들의 감정과 이 사회의 억압 구조가 스며 있기 때문이다. 작가는 이 소설에서 그냥 지나칠 수 있는 동작들까지 섬세한 필치로 그려 놓고 있다. 사소한 동작 속에 감정의 변화가 담겨 있으니 그 또한 주목해서 읽을 부분이다. 그런데 남녀간의 불통이 아닌 인간 관계의 불통은 어디서 기인하는 것일까.

상품정보고시

제품명	샤를르와 룰라의 목요일
판매가격	1,5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