칠순 나이의 작가 박완서가 고백하는 첫사랑에 관한 이야기.

“소설을 쓰는 동안 연애편지를 쓰는 것처럼 애틋하고 행복했다”는 작가는 「아주 오래된 농담」 이후 4년 만에 이 소설을 선보였다.

이사간 후배의 집구경을 갔다가 50년 전 첫사랑인 ‘그 남자’가 살았던 기와집이 남아있는 사실을 알게 된 주인공은 시대의 흐름에서 밀려나 퇴락했을지언정 외관은 건재하게 남아 있는 ‘그 남자의 집’을 통해 남자에 대한 기억을 되살린다.

‘현보’라 불리는 ‘그 남자’는, 소설 속의 ‘나’가 6·25전쟁 후 어려운 가족의 생계를 꾸리기 위해 서울대를 중퇴하고 미군부대에 일하러 다니던 시절 우연히 만나 사랑의 감정을 느낀 먼 친척이다.

고즈넉한 추억의 분위기가 배어 있는 이 소설은 스무살의 나이에 전쟁의 체험을 겪은 그 시대의 청춘들에게 그것이 얼마나 쓰린 기억이었나를 새삼 환기시켜준다.
박완서만의 독특한 페이소스와 기지 넘치는 문장이 전체를 이루고 있어 읽는 재미는 물론 진한 감동을 선사한다.

첫사랑이라는 본성에 가까운 감정과 대비를 이루며 전후 피폐한 일상과 그 생활전선을 직접 몸으로 겪어야 했던 여성들의 실상이 가슴 찡하게 그려져 있다.

그것은 이 각박한 현실을 그럼에도 살아내야 한다는 삶의 억척스러운 의욕이며, 원시적 동력이다.

이 점이 흘러 넘치고 있는 이 작품은 그 때문에 갓 뛰어오르는 등 푸른 생선처럼 신선해보인다.